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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반짝임

*소설 소개 사람들은 성장하면서 현실과 타협하기 위해 자신의 낭만을 깎는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했었는지, 싫어했었는 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로 하루하루가 바쁜 현대인의 삶. 그러한 곳에서 자신이 갖고 있던 낭만과 이상은 오랜 사치일 뿐이자 그저 낡아버린 것으로 전락한다. 소설 속 여자는 현실에서 벗어나 있는, 외관이 매우 낡은 집에서 살아가지만, 그 안에서는 아주 쾌활한 아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낭만을 잃지 않은 채 태어난 이유 를 잊지 않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매우 추상적이지만 인권이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한다.


*** 까치발을 든 어린 아이가 한 곳을 뚫어져라 응시한다. 아무도 살지 않는 낡은 집, 아이는 난간에 손을 딛고 그 안의 세계로 입성한다. 아이의 팔은 창문에 내린 먼지를 휩쓸고, 창문의 넝쿨은 아이를 방해하려는 듯 팔을 할퀸다. 태양은 이 낡은 집을 향해 저물어가고, 햇빛을 맞는 아이는 눈이 부신 듯 헤진 소파에 엎드린다. “누가 날 불렀어?” 소파에 얼굴을 묻은 채 아이는 물음을 던진다.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른다. 아이는 소파에 묻었던 고개를 치켜 들더니 정적이 흐르는 공간을 훑어본다. 이내 신비로운 미소를 짓고서 천장을 향해 눕더니 손을 뻗어본다. 그러다 서서히 잠에 든다. 그 순간 낡은 집에 꽃이 피기 시작하고, 굳게 닫혀 있던 또 다른 창문들이 활짝 열린다. 앞치마를 맨 학생들이 식기를 들고 수돗가로 나온다. 개구쟁이 같은 학생들은 옆 친구에게 물을 뿌리기 시작한다. “하지 말라니까!” “아 귀에 물 들어갔잖아” 여기저기 날리는 물벼락이 회색의 바닥을 진한 색깔로 물들이고, 학생들의 아우성은 종소리처럼 학교 전체로 울려퍼진다. 학생들은 물을 털어내기 위해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그들의 바쁜 시선에는 자연스레 학교 주변의 풍경들이 잡힌다. 학교 주변의 작은 산이 화창한 햇빛을 받고 있고 그 산에 위치한 낡은 집이 바 람에 창문을 펄럭이고 있음을 한 학생은 알아챈다. “저 집도 우리 모습이 웃긴가 봐. 창문을 막 흔 들어” “그러게. 근데 좀 무섭다.” 다른 친구는 대답한다. 이내 한 친구는 다른 아이의 눈치를 살피더니 손에 숨겨두었던 물을 뿌리고는 도망간다. 대낮의 교무실. “선생님~ 커피 한 잔 하세요.” 직접 탄 커피를 건네며 한 교사가 말한다.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선생님, 그 얘기 들으셨어요?” 커피를 받은 교사는 속삭이는 목소리로 이야 기한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무슨 이야기인지 묻던 그때, 바깥 수돗가에서 학 생들이 소리친다. “야!!!” “아직 수업시간인데 누가 이렇게...” 교사가 창문으로 이동한다. 바깥의 학생들은 교사와 눈이 마주친다.


그 순간 종이 치고, 교사는 이들에게 교무실로 올라오라며 손짓한다. 교무실 창문은 학생들이 불안한 표정을 지은 채 서로에게 속닥거리는 모습을 담는다. “아이들이 장난쳤나보죠?” “물장난을 했는지 다들 머리카락이 세 가닥으로 뭉쳐 있네요” 두 교사는 가볍게 웃으며 커피를 홀짝인다. 잠깐 멍을 때린다. 교실 문이 열리고 세 학생은 공손히 손을 모은 채 말을 꺼낸다. “죄송합니다…” “각자 반성문 쓰고 교실로 올라가세요.” 교사의 지시에 학생들은 교무실 구석을 향해 가고, 두 교사는 학생들에게서 시선을 거둔다. “그나저나 선생님 아까 하려던 말씀이 뭐였죠?” “아 맞네요… 그 몇 년 전에 여기 졸업한 아이 있잖아요. 단발에 장난꾸러기 같았던, 기억나세요?” “네그럼요.” “정말 아이다운 순수함이 있던 친구였는데, 갈수록 현실이 마음 같지 않았나 봐요. 단발 머리를 고수하던 아이가 취업하고는 머리를 산발이 되어가도록 기르고, 당최 웃지도 않고.. 결국에는 종 적을 감췄대요. 그러니까, 지금 실종 상태라네요. 부모님께서도 주변 지인들 중에서도 근황을 아 는 사람이 없고. 설마 납치당한 건 아닐지 걱정했는데 이건 절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뭐… 이런 저런 이유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요.” 놀란 눈의 교사 뒤로 이 대화를 엿듣는 학생들이 보인다. 학생들은 빽빽한 반성문을 제출하고 교무실을 나온다. “…어디에 계신 걸까?” 복도를 걷던 세 명의 아이 사이에 흐르던 정적을 깨고 한 아이가 말한다. “그러니까.” 아무런 말없이 걷던 학생1이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나… 누군지 알 것 같아. 며칠 전에 본 것 같거든.” 걸음을 멈추고 아이 둘은 이 아이를 바라본다. “학교 옆 산에 낡은 집 있잖아. 거기… 거기로 산발인 여자가 들어가는 거, 내가 봤어. 빛바랜 정 장을 입었는데, 움직일 때마다 그 먼지가 뿌옇게 피어올랐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정장의 먼지가 시야를 가리는 듯할 때마다 그 사람은 자꾸만 걸음을 멈춰서 낡은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내가 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 어쩌다가 지켜보게 됐는데 약간은 오싹한 기분이 들더라. …가볼래?” 학생의 말이 끝나자마자 학생들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은 복도의 모퉁이를 돌아 사라진다.


늦은 오후, 산 입구에서 다시 모인 학생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다. 긴장되었던 얼굴 표정이 풀 린다. 이내 낡은 집이 있는 쪽으로 산을 오르다가 집이 시야에 걸리는 위치에 자리를 확보한다. 숨죽이며 그 사람을 기다리던 중 바닥에 깔려 있던 나뭇잎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 사람인가?” 긴장한 얼굴을 한 채 속삭이며 한 아이가 묻는다.

알 수 없는 사람의 형체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학생들에게 점점 가까워진다. 몇 걸음 가다가 멈추고 다시금 터벅터벅 걷는 이 사람의 발걸음 소리에서 학생들은 그 여자가 왔 음을 확신하며 서로를 응시한다.

그녀는 동시에 낡은 집 앞에 몸을 멈추고 열쇠를 찾는 듯이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아이 같은 얼굴에 빛 바랜 정장과 산발인 머리. 무언가 맞지 않는 듯한 이 조합들이 클로즈업된

밤의 시작을 알리는 하늘과 학생들의 긴장된 얼굴이 차례로 비춰진다.

여자는 집 안으로 들어 가고 곧 낡은 집에 불이 켜진다. 학생들은 집 쪽으로 더 가까이 접근한다.


문이 닫힌 낡은 집 앞에서 학생들은 서성인다.

“후.. 이제 돌아가자. 그냥 사람일 뿐이야.” 한 아이가 말한다. “맞아… 다른 사람을 미행하다니 우리 너무 무모한 행동을 했어.”

학생들이 몸을 돌려 산을 내려가려던 순간, 낡은 집의 문이 열린다. 학생들은 문이 열리는 소리에 모두 걸음을 멈추고 낡은 집 안을 바라본다. 하얀 색의 전구들, 알록달록한 종이 인형, 맑은 물을 가득 담은 풀장 사이로, 한 사람이 현관을 향해 나오는 소리가 쿵쿵 대며 들린다.

얼굴은 비추어지지 않는다. 현관을 향해 나오는 작은 발의 걸음걸이에 집중한다.

그후 얼굴을 향해 서서히 시선을 옮기자 아이들의 시선에 담긴 얼굴은 다름 아닌 어린 아이. 어디서 많이 보던 빛 바랜 정장을 입고 단발의 깔끔한 머리를 하고 있는 이 아이는, 그 집으로 들어갔던 여자와 매우 닮은 얼굴까지 하고서 학생들을 응시한다. 몇초 정적이 흐른다.


학생들은 당황하고, 학생들은 아이의 낯익은 정장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사라진 여자의 행방을 묻 는다. 이내 아이는 반짝이는 미소를 지으며 풀장으로 뛰어들었다. 아이가 입은 정장의 먼지는 물 위로 떠오른다. 하얀 전구의 빛은 그 먼지에 닿아 몽환적인 풍경을 만들고 아이는 헤엄을 멈춘 채 고개를 든다. 이내 아이는 바깥의 학생들을 향해 앳된 목소리로 속삭인다.

“걔? 걔가 나야. 걔가 날 불러냈어.”

아이는 풀장을 나와 바깥의 학생들에게로 향한다. 학생들은 경직된 모습으로 이를 바라본다. 아이가 바깥의 땅을 밟자 마자 학생들은 무서운 것이라도 본 것 마냥 토끼 눈을 뜨며 소리친다. 어느샌가 아이의 얼굴은 산발을 하고 있는 그 여자로 변해 있다.

그 여자는 아이들에게 상냥한 웃음을 짓더니, 이내 다시 현관으로 들어간다. “이곳은 온전한 내가 사는 곳. 나를 본 건 비밀로 해줘”

산발이었던 머리카락이 제 스스로 잘려나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집은 너무나도 반짝였다.


writer: 강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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